전주성을 점령하였다.동학혁명군이 호남 일대를 휩쓸고 있을 때까지도 북접 교단은 지원은커녕 관군과 합세하여 동학군을 토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. 이 무렵 최시형은 '고절문(告絶文)'을 지어 각 포에 돌렸다.덧붙이는 글 | [횃불·촛불·응원봉, 동학농민혁명]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.
록은 남북접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.북접 교단은 농민전쟁을 원하지 않았다. 그들은 어디까지나 종교적 차원에서 농민봉기를 묶어두려 했다. 그것은 그전의 일련의 집회 기간에도 꾸준히 지켜온 입장이었다. 그나마 대중집회를 개최해도 교단 내 강경파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정도였고, 대외적 명분도 교조신원에만 국한하여 동학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데만 노력